민주주의는 고등학생의 영어 독해 문제에서 많이 다루는 정치 주제이며, 그중에서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도 많이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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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민주주의 시작은 모두 알듯이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으며 아테네(Athena)에서 시작되었으며 다른 국가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이는 아테네의 지도자 클레이스테네스 Cleisthenes가 지칭했으며 democracy의 demo는 사람을 지칭하며, cray는 Kratos라는 단어에 왔으며 power를 지칭한다. 이 단어들이 합쳐져 사람에 의해 통치된다는 뜻을 지니게 된다. 그것이 democracy 민주주의가 된 것이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분리된 아래의 세 개의 기관들을 가지고 있었다.
-에클레시아: 법률작성과 외교 정책을 지시하는 주권적 통치 기관
-디카스테리아: 시민들의 투표로 선정된 배심원들 앞에서 사건을 논쟁하는 대중적인 법원
-부울: 10개의 아테네 부족의 대표자들의 회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으로는 직접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법과 행정에 대하여 직접적인 투표로서 진행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투표권은 모두에게 평등하였는가?
그리스의 학자 헤로도토스(Herodotus)는 “민주주의에는 첫째, 법 앞에서 평등 가장 훌륭한 덕목이 있다.”라고 했다. 의사결정과정에서 중산층 (귀족, 육군과 해군)과 노동자 계급사이게 정치적 차별을 폐지한 것이다.
지금 현대에 마주하고 있는 민주주의와는 달리 선택적 민주주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지금의 대부분의 국가가 취하고 있는 보편적 평등의 민주주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아테네의 민주주의 투표권은 성인 남성만이 자격을 받을 수 있었으며, 여성, 노예, 외국인의 투표 참정권은 부여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아테네는, 약 100,000명의 시민(아테네 시민권은 부모가 아테네 시민이었던 남녀로 제한됨), 약 10,000명의 "거주 외국인", 그리고 150,000명의 노예가 있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18세 이상의 남성 시민들만이 민주주의에 참여했는데, 이것은 약 4만 명의 사람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시작
아테네의 민주주의 시작은 기원전 6세기의 심각한 아테네의 상황을 겪은 후에 개혁되었다.
민주주의 이전 시기에 아레이오스 파고스의 지배받고 있었고, 아레이오스 파고서는 아르콘(지배자) 구성이 되어 있었다. 아테네에서 대부분의 시민은 심각한 빈분 격차와 고리대금으로 채무에 의해 노예나 농노(헥테모로스)가 되었다. 특히 농부들에게 많은 희생과 착취가 일어났었고, 반란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 반란과 함께 무력의 제압과 희생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모든 계층은 반란 이시작되기 전에 타협을 시도하게 된다.
솔론
이때 솔론이라는 인물이 중재자의 역할로 추대되게 된다.
솔론은 양쪽 계급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솔론의 출신은 귀족 있었으며, 아래 계급은 그의 정의감을 신뢰했다. 솔론을 아르콘으로 결정된 이후 그는 아테네의 많은 부분을 개혁하게 된다.
첫 번째로 귀족들에게 사회, 경제, 정치에 많은 부분을 내려놓기를 요청한다.
두 번째로 채무불이행으로 노예가 된 사람들을 해방하고, 채무불이행에 따른 노예화에 대하여 전면 금지했다.
그는 아르콘과 아래 이오스 라고스를 각각 내각과 법률로 분리했다. 그의 업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에클레시아(민회)의 최종결정권 부임이다.
에클레시아(민회)는 광장에 모여서 진행이 되었으며, 원로원의 역할을 한 아래 이오스 라고스의 역할이 법률로 축소되면서, 중요도가 증가하게 되었다. 민회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모든 성인 남성들에게 의사에 대한 권리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여성과 노예를 고려하지 않은 부분적인 권리에 대한 부분적 권리 확산이지만 대다수의 투표에 대한 도입은 정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아쉽게도, 에클레시아에서는 연설은 다수에게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으며, 내각인 아래 이오스 파고서는 귀족에 의해 지배당했다.
타성 주의 (ostracism)
오스트라시즘이라 불리며 아테네에서 시민이 투표를 통해 후에 강한 권력자가 되려는 사람을 10년 동안 추방할 수 있는 제도였다. 비밀투표였으며, 6000표가 넘은 사람은 10일 이내 아테네를 떠나 10년간 지내게 되었다. 독특하게도 그 사람의 재산권은 유지되었다.
이 오스트라시즘은 직접 민주주의로 구성된 에클레시아의 중요한 힘이 됐다. 회의에서 에클레시아는 전쟁과 외교 정책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법률을 작성하고 개정했으며, 공무원의 행위를 승인하거나 비난했다. 의사결정은 단순 다수결로 결정을 내렸다.
부울 (Greek Boule)
두 번째로 중요한 기관은 부울 즉 500인 위원회였다. 부울은 아테네의 10개 부족에서 각각 50명씩 500명의 사람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1년 동안 공의회에서 일했다. 부울은 매일 만나서 통치의 대부분의 실무를 했다. 그것은 공무원들을 감독했고 해군 함선과 군마와 같은 것들을 담당했다. 그것은 다른 도시 국가들의 대사들과 대표들을 다루었다. 그것의 주요 기능은 에클레시아 이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부울의 500명의 회원은 전체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를 지시했다.
독특한 것은 부울의 직위는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무작위로 선발하는 것이 선거보다 더 민주적이었기 때문에 선택된 방법이었다. 순수한 기회이며 외부의 인기와 부 같은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를 부가했다. 또한 이 제도는 공무원의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영구적 공무원 계층의 발달을 막았다. 하지만 이 제도에도 불구하고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의회에 일을 많이 했다는 역사가들의 주장들이 있다.
디카스테리아 (The Dikasteria)
대중적인 법원이었으며, 매일, 500명 이상의 배심원들이 30세 이상의 남성 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뽑혔다. 모든 민주주의 제도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심원들이 거의 무제한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디카스테리아가 "민주주의의 힘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지금 과는 달리, 아테네에는 경찰이 없었기 때문에, 법정 소송을 제기하고, 기소와 변호를 주장하고, 다수결에 의해 판결과 선고를 내리는 것은 민주주의 자신들이었다. 배심원들은 그들의 일에 대한 임금을 받았고 그래서 그 직업은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아테네는 세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임금을 위해 돈은 관세, 동맹국의 기부금과 부과된 세금에서 나왔다. 이 규칙에 대한 한 가지 예외는 이는 부유한 아테네 사람들이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나 도시의 연례 축제에서 연극이나 합창 공연을 하는 것과 같은 주요 시민 사업을 후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낸 일종의 세금이었다.
그리스 민주주의의 끝
기원전 404년에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배하게 되고,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30개의 독재자의 정부를 새로운 민주주의로 대체한다. 스파르타의 독재는 실패였고, 심지어 스파르타인들도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는 인정했다 한다.
그리스 세계에서 스파르타의 권위주의적 지배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빠르게 다른 주요 도시 국가들로 확산하였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지배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원전 371년 스파르타는 테베 장군 에파미논다스에게 200년 만에 처음으로 대패했다.
그러나 테베의 그리스 지배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때 낙후되었던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는 그의 나라를 군사 강국으로 만들었다. 필리포스의 결정적인 승리는 기원전 338년 아테네와 테베의 연합군을 격파하였고 1년 후, 필리포스는 코린토스 동맹을 결성하여 그리스 연방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리스의 운명은 이후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과 함께하게 된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완전 평등한 민주주의는 아니었으며, 한정적인 특권을 계층에 주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민주주의 투표로써 진행하는 제도의 초석이 된 것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참조>
https://www.history.com/topics/ancient-greece/ancient-greece-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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